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천보 전투 (문단 편집) == 북한에서의 왜곡과 과대평가 == [[파일:19-A-.png]] [[북한]]에서는 [[김일성]] [[우상화/북한|우상화]] 차원에서 이 전투를 그야말로 신화로 포장한다.[* 가랑잎 타고 두만강을 건너고,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웃통을 벗고 [[모래]]밭을 구르니 모래가 [[쌀]]이 되었다는 전투가 이것이다.] 또 [[일본군]] 수천 명을 섬멸하고 골짜기마다 일본군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는 보천보 신화를 떠든다. [[북한 영화]] <내가 본 나라>에는 하도 [[일본군]]이 많이 죽어서 시체를 [[호박]]이라 속여서 날랐다나 뭐라나. 물론 당연히 거짓된 [[우상화]]다. 모 [[북한이탈주민|탈북자]]는 자신이 [[탈북]]하기 전까지 보천보 전투는 [[김일성]]이 200명도 못 되는 병력으로 수십만 대군을 격파한 대전투로 잘못 알았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과대평가된 부분은 '''김일성 본인도 저서에서 부정한''' 내용이다. 그렇지만 '''모든 북한의 예술작품은 김일성이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뒤에서 김일성 자신이 조장했을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특히 조기천처럼 황당한 과대평가를 한 사람은 김일성이 아주 좋아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다룬 다른 작품으로는 북한 시인 조기천의 장편 서사시 <백두산>이 있다. >(중략)[br]이는 이름만 들어도 / 삼도 왜적이 치 떠는 / 조선의 [[빨치산|빨찌산]] [[김일성|김 대장]]![br]이는 [[백두산|장백]]을 쥐락펴락하는, / [[태산]]을 주름잡아 한 손에 넣고 / 동서에 번쩍![br]천리허의 대령도 단숨에 넘나드니 /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축지법을 쓴다'''고]][br](후략) > - 조기천 <백두산> 보천보 전투를 묘사하고 [[김일성]]을 우상화해 북한 정권이 아주 좋아하는 작품이다. 북한 정권 수립 전인 1947년에 썼는데 '''[[김일성]]이 [[조기천]]을 칭찬'''하고 서사시 창작 중 따로 면담도 하였으며 결국 북한에서 <시인 조기천>이라는 영화도 만들었다. 내용을 보면 어째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를 복붙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 노래가 이 시에서 나온 게 맞다. ‘간삼봉에 울린 아리랑’ 등의 노래로 우상화되기도 했다. [[세기와 더불어]] 같은 김일성의 자서전에는 대단한 전투가 아니라는 듯한 김일성의 발언이 있지만 정작 북한에서는 이 전투가 항일운동의 전부인 것마냥 여전히 [[역사 왜곡]]을 하고 있다. [[혜산시]]의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은 현재도 중요한 우상화 근거 기념물이며 보천보 전투 등에 동원된 부대로 '''[[중국공산당]]의 조직인 [[동북항일연군]]이 아니고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 김일성이 직접 만들었다는 가짜 군대를 들면서''' 이 부대가 심지어 해방 당시 일본군까지 소탕하여 조국의 광복에 기여하였으며 그 부대는 현재의 북한군인 [[조선인민군]]이 되었다고 역사 왜곡을 한다.[* 다만 김일성의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에는 "중국 동북지방에서 활동할 때에는 동북항일연군이라고 하였고, 조선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거나 조선에 나와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이라고 정황에 맞게 이름을 바꾸어 가며 활동했다."고 서술되어 있다. 그런데 조선인민혁명군 자체가 아예 존재한 적조차 없지만 '''자신은 부대에 입대한 것이 아니고, 아예 자기가 부대를 창설했다'''면서 어떻게든 동북항일연군이라는 진실을 섞으며 사실처럼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던 것이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6541|#]] 자신이 만주 지역 조선인들의 독립운동을 모두 지휘했다는 주장이다.] 정확히는 아래처럼 묘사한다. > 면사무소,우편국,산림보호구,소방회관을 비롯한 적통치기관들에서 삼단같은 불길이 솟구쳐올랐다. > 정치공작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작성하신 《포고》와 《조국광복회 10 대강령》[* 김일성은 저런 글을 쓴 적조차 없다.] 을 거리에 불이고 선전물을 뿌리면서 정치사업을 하였다. > (…) >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북한의 모든 문서에서는 국가 원수를 볼드체로 표기한다.]대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 《그 의의는 일본놈들 몇명 죽인데 있는것이 아니라 조선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있으며 일본제국주의와 싸우면 승리할수 있다는 신념을 북돋아주는 혁명의 서광을 비쳐준데 있습니다.》 > 보천보전투가 가지는 의의는 일본놈을 몇명 죽인데 있는것이 아니라 조선사람은 죽지 않고 살아있으며 일제와 싸우면 반드시 승 리할수 있다는 신념을 북돋아준데 있다. > 보천보에서 녹아난 일제는 참패를 만회해 보려고 부랴부랴 주변에 있는 수많은 군대와 경찰을 긁어모아가지고 [[조선인민혁명군]][* 사실은 보천보 전투를 이끈 부대는 김일성이 만들었다고 하는 이 부대가 아니고 [[동북항일연군]]이다.] 주력부대를 추격해 왔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추격해오는 적들을 커우위수이산(구시산)과 지엔싼봉(간삼봉)에서 모조리 소탕해버리시였다.[* 간삼봉 전투를 묘사하는 내용인데 이 대목에서 김일성 자신이 '''일본군을 소탕했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주성하]] 기자는 전광이 이끈 전투로 파악한다. [[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joosungha/co-sh-03312017104624.html|#]]] > 보천보전투후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커우위수이산에 이르렀을 때였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이 뒤쫓아오리라는것을 미리 예견하시고 부대에 전투준비를 철저히 갖추게 하시였다. > 얼마후 적들이 커우위수이산으로 공격해왔다. > (…) >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지휘밑에 고지에로 기여오르는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안기였다.[* 이 이후부터 완전한 거짓말이다.] > 이날 전투에서 겨우 살아 도망친 놈들은 200명정도밖에 안되였다.[* 일본측 2,000 명 중 1,800명이 전사했다는 뜻이다.] > 적들은 제놈들의 시체가 어찌나 많았던지 그대로 가져갈수 없어 대가리만 잘라 마대나 상자에 넣어 실어갔다. > 그때 시체운반에 동원되였던 달구지군이 모르는척하고 일제놈에게 마대 안에 넣은것이 무엇인가고 묻자 [[호박]]이라고 대답하여《호박대가리》이야기가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되였다.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혁명력사 (중학교 제 4 학년용) p.81~82 , 2012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